욕망과 생존의 충돌: 라 셀레스티나 속 15세기 스페인의 계급 사회와 풍속도

페르난도 데 로하스의 걸작 『라 셀레스티나』는 단순한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넘어, 15세기 말 격동하던 스페인 사회의 적나라한 민낯을 보여주었습니다. 부와 명예를 가진 귀족 계층과 가혹한 현실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하층 계급의 대비는 숨 막히는 긴장감을 자아내며, 당시의 풍속도를 생생하게 드러냈습니다. 이 글에서는 『라 셀레스티나』를 통해 본 스페인 계급 사회의 모습과 그 속에 녹아든 인간 군상의 욕망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728x90

상층 계급의 고립된 욕망과 무능

주인공 칼리스토와 멜리베아는 당대 최고 명문가 자제들로, 부와 지위를 모두 가진 상층 계급을 대변했습니다. 그들은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고등 교육을 받고 세련된 언어를 구사했지만, 정작 현실적인 문제, 특히 복잡한 감정과 사랑의 과정을 스스로 헤쳐나갈 능력은 부족했습니다.

 

칼리스토는 멜리베아에게 첫눈에 반해 맹목적인 욕망에 사로잡혔지만, 그녀의 거부에 부딪히자 자신의 무력함을 절감하고 외부의 도움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멜리베아 역시 처음에는 순결과 체면을 지키려 했지만, 셀레스티나의 농간에 넘어가면서 억눌렸던 욕망에 굴복했습니다.

 

이들의 사랑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폐쇄적인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졌으며, 현실 세계의 위험이나 타인과의 관계에는 서툴렀습니다. 그들의 비극은 고립된 채 순수한 감정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는 현실을 외면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었습니다.

반응형

하층 계급의 처절한 생존과 현실적 욕망

반면, 셀레스티나와 하인들(셈프로니오, 파르메노), 그리고 매춘부들은 생존이 최우선인 하층 계급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습니다. 이들은 도덕이나 체면보다는 당장의 이익과 쾌락을 좇았습니다. 셀레스티나는 타고난 처세술과 기만에 능했으며, 상층 계급의 약점을 이용해 돈을 벌었습니다.

 

하인들 역시 주인에 대한 충성심보다는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고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의 언어는 거칠고 직설적이었으며, 삶에 대한 태도 역시 지극히 현실적이고 냉소적이었습니다. 귀족들의 고상한 사랑 놀음은 이들에게는 돈벌이 수단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삶은 빈곤과 위험이 도사리는 거친 현실에 뿌리내리고 있었으며,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과 가차 없는 생존 법칙이 지배했습니다.

SMALL

셀레스티나: 두 세계를 잇는 위험한 매개체

셀레스티나는 귀족 세계와 하층 세계를 연결하는 독특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녀는 상층 계급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대가로 하층 계급의 현실적인 이익을 취합했습니다. 그녀는 칼리스토의 절박한 마음을 간파하고, 멜리베아의 숨겨진 욕망을 꿰뚫어보았습니다. 동시에 하인들의 불만과 탐욕을 자극하여 자신의 계획에 끌어들였습니다.

 

그녀는 각 계급의 약점과 욕망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으며, 이를 이용해 상황을 조종했습니다. 셀레스티나의 존재는 당시 사회의 위선과 부패, 그리고 인간 본연의 욕망이 계급을 초월하여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과 같았습니다. 그녀는 욕망의 매개체이자 동시에 그 욕망이 불러온 파국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계급 간의 근본적인 가치관 충돌과 비극

『라 셀레스티나』의 비극은 결국 상층 계급과 하층 계급의 근본적인 가치관 차이와 소통 부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칼리스토와 멜리베아는 자신들의 사랑만을 중시하며 하인들의 존재나 셀레스티나와의 거래가 가져올 현실적인 위험을 간과했습니다. 반면, 하인들과 셀레스티나는 그들의 봉사나 도움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며, 이것이 충족되지 않을 때 가차 없이 등을 돌렸습니다.

 

귀족들의 오만과 하층민들의 탐욕이 뒤섞이며, 결국 이들의 관계는 배신과 폭력으로 얼룩졌습니다.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 채 각자의 욕망만을 좇았던 결과는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안겨주었습니다. 이 작품은 계급 간의 간극이 인간 관계와 사회 전체에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섬뜩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라 셀레스티나』는 단순한 줄거리 전개 외에도 당시 스페인의 풍속도를 놀라울 만큼 생생하게 담아냈습니다.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이 사용하는 사실적인 언어(고상한 스페인어와 속어의 혼합)는 각 인물의 성격과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며, 당시의 구어체를 엿볼 수 있게 했습니다.

 

하인들의 생활, 매춘부들의 일상, 사치스러운 귀족들의 생활 방식, 종교적 형식주의 등은 그 시대의 모습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셀레스티나를 중심으로 한 하층민들의 세계 묘사는 이후 피카레스크 소설의 사실주의적 전통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작품은 마치 15세기 스페인의 거리를 걷는 듯한 생생함을 선사하며, 숨 막히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냈습니다. 이 모든 요소가 결합되어 『라 셀레스티나』는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 본성과 사회 구조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만드는 불멸의 고전으로 남아있습니다.

---

■ 저자 프로필

 

페르난도 데 로하스(Fernando de Rojas, c. 1470–1541)는 스페인의 작가이자 법률가였습니다. 개종한 유대인 가문 출신으로 알려졌으며, 살라망카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습니다. 『라 셀레스티나』는 그의 거의 유일한 문학 작품으로 알려졌고, 그의 생애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많지 않았습니다.

---

■ 시대적 배경

 

『라 셀레스티나』는 1499년 처음 출간되었고, 이는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이행하던 시기의 스페인 사회를 배경으로 했습니다. 레콩키스타(국토 재정복)가 막 완료되고 신대륙 발견이 이루어지는 등 큰 변화의 시기였으며, 중세의 봉건적 질서가 흔들리고 상업의 발달과 함께 도시의 중요성이 커지던 때였습니다. 귀족 계급은 여전히 권력을 유지했지만, 새로운 사회 질서 속에서 하층 계급과의 관계도 복잡해지고 있었습니다. 종교적, 도덕적 가치관의 혼란도 나타나던 시기였습니다.

---

■ 줄거리

 

귀족 청년 칼리스토는 아름다운 멜리베아에게 반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그의 하인 셈프로니오는 늙고 교활한 뚜쟁이 셀레스티나를 소개했습니다. 칼리스토는 셀레스티나에게 많은 대가를 약속하며 멜리베아의 마음을 얻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셀레스티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칼리스토의 다른 하인인 파르메노까지 포섭하고, 갖은 술수와 마법, 설득으로 멜리베아의 순결한 마음을 무너뜨렸습니다. 결국 칼리스토와 멜리베아는 밀회를 통해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

■ 결말

 

셀레스티나는 칼리스토에게서 받은 보물을 하인들과 나누기로 한 약속을 어기고 독차지하려 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셈프로니오와 파르메노는 셀레스티나를 살해했습니다. 하인들은 도망치려다 체포되어 처형당했습니다. 이후 칼리스토가 멜리베아와의 밀회를 위해 담장을 넘다 떨어져 죽었습니다. 칼리스토의 죽음을 들은 멜리베아는 절망에 빠져 높은 탑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멜리베아의 아버지 플레베리오는 딸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비참한 현실을 한탄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났습니다. 관련된 모든 인물들이 파멸하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습니다.

---

천 년의 시간을 넘어 울려 퍼지는 사랑과 슬픔의 서사, 《겐지 이야기》

 

인간의 용기와 의지를 그린 감동 대작, 헤밍웨이의 퓰리처상 수상작 《노인과 바다》

---